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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위 복자, 잘 알고 계신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복자(福者)로 선포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1791년 신해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순교하신 분들인데, 초기 한국천주교회의 신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분들 중 83위는 시대로는 오히려 103위 성인보다도 앞서 순교하신 분들입니다.
12세 이봉금 아나스타시아가 최연소 순교자이며,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증조부인 김진후 비오가 75세로 순교하였습니다. 이들 가운데 첫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이종사촌으로 전라도 진산 출신이었습니다. 1790년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신주를 불사르고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렀다가 체포령이 내려지자 자수한 후 전주 남문 밖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중국인 주문모 야고보 신부는 조선에 입국한 첫 성직자로 조선인으로 변장하여 1794년 입국했습니다. 강완숙 골룸바의 집에 숨어 지내면서 성사를 집전해 6년만에 조선교회 신자 수를 1만 명으로 늘리는 데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신유박해 때 귀국을 결심했다가 순교하기로 마음먹고 자수하여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의 아버지입니다. 형 정약전 안드레아에게 교리를 배워서 가톨릭에 입교하였고,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2권을 집필해 교우들에게 보급했고 평신도 단체 ‘명도회’ 초대 회장을 지내다 1801년 순교했습니다.
강완숙 골룸바는 입교 후 한양으로 거처를 옮겨 주문모 신부님을 도와 초대 여회장으로 활약하며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주문모 신부의 피신처 겸 집회 장소로 제공했다가 체포되었고 서소문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전라도의 첫 신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양반 가문 출신으로 초기 한국천주교에서 평신도가 성직자 대신 미사와 성사를 맡는 가성직제도에 따라 성직자로 활동했습니다. 주문모 신부를 호남으로 데려가 성무 집행을 보조해 ‘호남의 사도’라 불립니다.
유항검의 아들 부부인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는 주문모 신부에게 동정 생활의 뜻을 전하고 결혼 뒤에도 오누이처럼 지냈습니다. 유중철은 아내에게 보낸 서한에서 “누이여,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전주교구에서는 매년 가을 이들을 기리는 ‘요안 루갈다제’를 열고 있습니다
이성례 마리아는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부인이자 별도의 시복 절차 중에 있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입니다. 박해를 피해 자주 이사를 하면서도 성경으로 자식들을 키우고 남편을 도와 교우촌 개척에 힘썼습니다. 투옥 후 남편이 순교하고 젖먹이 막내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배교하고 석방되었으나, 장남 최양업이 중국에 유학 중인 신학생인 사실이 드러나 다시 수감되었습니다. 처형전 면회 온 자식들에게 “형장에 오지 마라”는 말을 남긴 뒤 당고개에서 순교하였습니다.
124위 복자는 신분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가난이 일상화됐던 시대에 그리스도의 형제애를 보여주었고, 특별히 신앙의 유산을 가족에게 물려주고 이웃과 함께 나누면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았던 분들입니다. 그 분들이 남겨주신 신앙의 유산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나눌 수 있는 한 주 되시길 빕니다.
- 교육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