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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한국 천주교 2부 -
조선으로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은 언어와 문화가 우리와 너무나 달랐기에 조선인 신부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최방제 프란치스코 세 분을 신학생으로 선발하였고, 이분들은 유학길에 오르십니다. 드디어 1845년, 조선인 최초로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사제 서품을 받으십니다. 조선으로 돌아와서 성무를 집행하고 신자들을 사목하시던 신부님께서는 목자의 부족을 절실히 느끼고는 중국에 선교사를 청하러 가시다가 관원에 체포되십니다. 신부님께서는 결국, 1846년 9월 16일에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목이 잘려 대나무에 걸어 놓은 신부님의 시신은 150리 길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주일 만에 고향인 미리내에 도착하여 안장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체험합니다. 당시의 그 시련이 한국 교회에 더할 수 없이 풍요로운 결실의 은총이었음을 후손인 우리는 깨닫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죽음은 당시로 보자면, 한낱 대역무도한 한 인간의 죽음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는 한국 천주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된 초석이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태어나신 솔뫼, 신부님께서 돌아가신 새남터, 신부님께서 묻히신 미리내는 모두 거룩한 성지가 되었고, 하느님 승리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신 값진 신앙의 역사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도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서 목숨의 위협을 받거나 비난받지 않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내면 성당에 갈 수 있고, 미사를 드릴 수 있고, 성체를 영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편해진 우리의 환경이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가감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신부님처럼 하느님만을 믿고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 교육부 -